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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였다.

by 캐롤의법칙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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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국 다른 항외과 병원을 다녀왔다.

치질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불편한 감이 있고, 저번주에는 조금이긴 하지만

피가 좀 나왔었고...변비거나 설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데도 낫질 않는다.

안 낫는 걸까?

그래서 이걸로 또 스트레스 엄청 받고 고민하다가 결국 사당에 있는 외과 병원을 찾았다.

왜 정작 치질 수술할 때는 이 병원이 생각 안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항문쪽으로는 오래 된 준종합병원이고 예전에 저 근처 살았을 때도 몇 번 갔던 병원인데...

 

어쨌든 결론은 깨끗하단다. 

특별한 상처도 없고, 잘 아문 것 같고, 의사가 손가락을 넣고 만지면서 아픈데 있냐고 물었을때도

아픈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낫질 않는 걸까.

3개월이면 다 완치된다 하는데, 왜 아직 이러냐니까 사람마다 다르다고 당연한 듯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1년 지나도 피 났다고 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2~3년도 간다고...

이게 뭔 말일까. 사실 수술한 병원 의사도 이런 식의 대답이었는데.

수술을 했으면 상처가 낫고 정상으로(나중에 재발할 수도 있지만)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조금만 단단한 변을 보거나 혹은 그렇지도 않았는데 피가 묻는 건 

이상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더라.

 

내 항문 조직이 좀 얇다고는 한다. 그래서 피가 잘 나는 걸 수도 있다고.

하지만 오늘 검사 결과 별 다른 상처도 없고 전혀 이상없다고.

변의 굵기도 가늘어진거 같다고 하니, 그건 사람마다 다르고 내 항문 크기도 별 이상 없다고.

 

내가 예민한 것도 사실이나, 의사들 말을 종합해보면 결국 이미 한 번 수술해서

피부를 건드린 이상 피는 계속 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좌욕하고 약 바르고 먹는 거 조절하면

된다고. 이게 이상한 건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피가 나지 말아야지. 피가 계속 묻어날 수 있다니...난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수술 전을 생각해보자. 변이 좀 굵고 단단하다고 계속 피가 나나? 그렇지 않잖아.

이게 반복되야 상처가 나고 피가 나는 거잖아. 근데, 지금 내 상태는 그렇지도 않은데, 

피가 묻는 거잖아. 그럼 뭔가 잘 못 된거 아닌가?

하지만 의사는 아니란다. 수술한 곳에서는 피를 선지처럼 쏟거나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 하고, 이번 의사도 괜찮다 하고. 이러다 또 피가 나오면, 나와도 병원도 못 가고,

왜냐면 괜찮다 할테고..그냥 연고 바르고 좌욕 잘 하라 할테고...

 

그저 내가 피부가 약해서 더딘거라 보면 된다. 의사가 이상이 없다는데, 것도

수술한 의사 뿐 아니라 다른 병원 의사까지 그러는데...그런데도 나는 왜 의심되고 불안하지?

 

일요일 밤, 혼자 옥상에서 10분간은 오열을 한 것 같다.

회복이 더뎌서 속상해서 운 것도 있고, 이런 내가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나서 울었다.

어차피 수술 한 것도 내가 한 거고, 이 지경까지 온 것도 내가 한 거고.

그러니 결국 문제는 '나' 인 것다. 

그러고 보니 수술 결정하기 전에, 내가 결정하는 거니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도

한 거 같다. 그리고 결론은 후회 중이다.

 

계속 이렇게 조그마한 거에도 피가 날 거면 안 하는 게 나았지.

수술하지 않고 변비부터 해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면 낫지 않았을까? 적어도 매일 밤, 매일 아침

배변 때문에 이렇게 까지 신경쓰고 예민해 지진 않지 않았을까?

하지만 수술을 해 버렸지. 그건 우울증 증세도 한 몫하긴 했다.

이러니 저니리 해봤자 '내'가 문제다. 

그냥 죽는 게 나을 거 같다란 생각이 든다.

이런 걸로 스트레스 받아 잠도 못 자고 예민해져 도통 아무것도 못 하고, 

다른 건 생각도 못 하는 '내' 가 살아있는 것 보다 그냥 죽어서 아무것도 느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생각하면 또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살고 싶은 거겠지. 어서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 싶지. 그러니까, 아까도 아무도 없는 성당에 가서

초를 켜고 믿지 않는 '신' 에게 기도를 하고 왔겠지. 알고 있다. 

던져버리고 싶은 만큼 끌어안고 싶기도 하단 걸. 그걸 혼자서 하려니 미칠 노릇이다.

엄마에게도 미안하긴 하다. 나는 엄마를 살펴 볼 수 가 없다.

사주가가 내년이나 내후년에 엄마 사주에 위험수가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문제만 보인다. 그리고 이게 과연 그 정도의 '문제' 인가 싶기도 하다.

 

 

정리해 보자. 

두 군데, 심지어 다른 병원 모두에서 이상이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회복 기간도 다르고, 변의 굵기도 다르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그 불편함이 아직까지

있을 수 있다 한다. 그러니 나는 그저 먹고 있는 거 잘 먹고 운동하고 지금처럼 잘 하면 되는 거다.

피는 또 날 수 있다. 그러면 좌욕하고 그래도 불안하면 그냥 병원 또 가면 된다.

이게 언제 완전히 사라질진 모르겠지만, 그냥 병원가면 된다. 그러면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난 계속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러는가.

진짜 다른 문제에 해답이 없고 막막하니 현재 눈에 보이는 문제에 이리도 질질 끌려다니며

우울해 하고 감정 조절을 못 하는 건가?

 

'내'가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위에 처럼 지나치게 하나에 신경쓰는 거? 그러면서 '내' 다른 현실은 회피하려 하는거?

 

예전에는 뭔가 우울한 일이 생기거나, 힘들게 하는 일이 생겨도

분노인지 뭔지의 힘으로 '이렇게는 안 될 거다' 란 맘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확실하지 않은 게 불안한 거다. 의사한테도 계속 같은 걸 물어보고, 사주가 한테도 계속

같은 걸 물어보고. 정확한 답이 없는 게 불안한 거다.

 

치질도 그렇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런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사람마다 다른 그 회복 기간이 도대체 나는 언제인지? 매번 피를 봐야 하나?

도대체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풀린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언제, 무엇으로 풀린다는 건지?

모두 알 수가 없다.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뭘 어떻게 풀 수도 없다.

수학 문제도 아니고 마지막 페이지가 존재하는 책도 아니다. 

예상도 안 되고 결과도 알 수 없다. 과정도 알 수 없다. 나는 분명 잘 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수시로 문제들이 튀어 나온다. 심지어 '같은 문제' 들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딱 이렇게 결론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짐을 적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적고 나서도 뒤돌아서면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진정하고 진정해도.

 

그래도 다짐을 적어보는 게 낫겠지? 한동안 해 왔던대로 관리하고,

알바든 뭐든 조금씩 하면서 돈이 좀 모이면 여행 갔다오는 걸로. 

너무 예민해지지 말자고. 누구다 다 이렇다고. 내가 회복이 조금 더딘거라고.

괜찮다고. 의사도 두명이나 괜찮다고 하는데 나 스스로 만들 일이 아니라고.

 

이제 다시 강해지자고. 난 원래 멘탈리 무진장 강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맞다. 난 사실 강하다. 그러니 여태까지 버텨왔지. 이 정도 수술에, 이 정도 과정에 이렇게

무너지는 내 모습은 좀 신기하고 우습기까지 하지. 

정신차리자. 진짜 밖에서 보면 내가 겪고 있는 이 일은 너무 당연하지만 사소한 거라고.

항상 하는 생각, 사소한 거에 내 목숨을 걸지 말자고.

'내'가 문제인 건 맞는데, 이런 문제에 내 '목숨'을 거는 건 너무 허무하다.

진짜 암이나 신체 일부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본다면 내 뺨을 갈길 일이긴 하다.

남의 불행과 비교해 나의 다행을 느끼는 걸 싫어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좀 정신 차리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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