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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우울이 시작되는 원인과 가짜 마음

by 캐롤의법칙 201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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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아질 때는 왜 인지 잘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얻거나,  보거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서 분석할 수 있을때나, 아니면 진짜 소소한 것들.

그런데 기분이 침체되는 원인, 정확히.

우울감이 시작되는 징조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보면 어둡고 깊은 바닷물에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다.

우울감과 괜찮음의 사이. 이 갈림길의 선택에 따라 끝없는 비관과 우울함의 거리를 걷기 시작하거나

혹은 적당히 괜찮음을 유지하면서 시간을 떼우거나.


현실 도피를 위해 망상의 세계를 만들다 보면 되려 현실과 망상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는데(크게 혹은 작게)

그냥 내 생각에는 나는 저 충돌의 계기에서 우울함이 올라오는 거 같다.

그저 내 재미를 위해 덕질이란 것을 하다가도, 그들의 화려함과 명예와 모든 걸 얻는 듯한 '운'을 보면

그들을 재미삼아 파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차피 대중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그들일 뿐인데 내가 굳이 스스로를 어리석게 느껴야 하는 걸까.

이는 전에 얘기한 연예인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무리 쿨한척 해도 다른 사람에 비해 현실 자각을 한다해도

박탈감을 안 느낀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 갈림길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이 나는 가짜 마음을 입 밖으로 내민다.

사실, 내 속은 지금 검은 타르 같다.

너무 끈적거리고 너무 뜨겁고 역한, 검은 늪이라 나조차도 쉽사리 꺼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절대 입밖으로 내진 않는다. 다행히 그 과정에 허세는 부리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 적당한 인도주의적 의견을 내민다. 여기에 너무 전문성이나 감성적 호소는 오히려 역효과다.

적당히 현실을 인지하는 것처럼 설명과 감정을 섞어 얘기한다. 그러면 나는 평범하고 침착한 논리의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가장 편하고 또 가장 불편한 방법이다. 

이 불편한 방법이 우울함을 흔드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막을 수가 없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내 존재가 너무 미미해서 그럴 수 없다. 스스로가 인정할 수가 없어, 진짜 내 검은 마음을 모조리 끄집어 낸다면,

나도 내가 어떤 모습일지 예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컨트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자.

앞서 말했듯 내 속마음은 검은 타르 같다고 했다. 

아, 나는 여기에 원인을 모른다는 문장을 나열하면서 가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울함이 올라오는 원인? 갈림길? 아니다. 나는 원인을 알고 있다.

타르 속에 숨은 원인을 볼 수 있다.

여기는 내 개인공간이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기 위해 만들었으면서도 나는 쉽사리 속마음을 적고 있지 않는 거다.


원인을 모른다고? 그럴리가 있는가. 내가 말하지 못 하는 건 검은 늪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부끄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샤덴 프로이데. 남의 불행에 행복을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느낄 일이 없는 거다. 


내 현실은 너무 짜증나고 답이 없고 막막하니까, 샤덴 프로이데만을 바란다.

아, 물론 알고 있다. 옳고 그름따위, 도덕적, 양심적 마음 따위 내가 모를 것 같은가.

미움과 시기가 무엇인지도 알며 심지어 나 또한 그런 일을 겪었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 앞날만이 걱정이다.

나는 인간이고, 인간이며, 지극히 심한 인간이다.


주변인, 일반인 뿐만 아니라 연예인, 모든 것은 적용된다.

관심거리나 연예인등 초반은 괜찮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그들의 불행을 원하게 된다.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아는 척, 동감하는 척하며 나름 객관적, 논리적 이유와 설명을 해대지만,

결론은 하나다. 


나는 너무 짜증난다. 그들이 행복해 보여서. 모든 행운이 그들에게만 깃든것 같아서.

알고 있다. 뼈져리게 알고 있다. 분명 그들도 나름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들.

내가 왜? 나는? 이라고 해봤자, 그냥 나에게는 그런 운도 환경도, 사람도 주위에 없을 뿐이고,

그 없음이 결코 내 탓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나는 우울해진다. 알고 있어도 우울해진다. 이것은 매번 반복이며 이 루틴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 나는 내가 컨트롤를 잘하고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라 착각했다.

그저 이따위 루틴에 갇혀 사는 한심한 인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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