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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 리뷰

짐승 - 이순정

by 캐롤의법칙 2020.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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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1권 무료보기 이벤트를 하는 중인데 그 중 유일하게 본편까지 읽은 책.

(외전격인 3권은 읽지 않음. 리뷰보니 두 주인공보다는 둘 사이의 아이와 메인수인 지언을 고쳐주었던

도인 새의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기에. 흠흠. 아마 나중에 건드려보지 않을까 싶음.)

 

본편은 2권 완결이다. 

 

가세가 기울어가는 양반집에서 태어났으나 부족함 없는 삶속에 어여쁜 부인까지 얻고 평범하게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였던 송지언(메인수)은 2번이나 시험에 낙방한 채로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다 폭우를 만나 산 속에서 길을 잃고 정신을 잃게 된다. 눈을 떠보니 짐승같은 모습의 사내가 그를 구해주었단 걸 알게 되지만, 사내는 지언의 생각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에게 자신의 강함과 지언을 위해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다짐만 강요하며 아이를 낳아 달라는(내 아를 낳아도 동양버전인가ㅋ) 강요와 강압으로 지언을 옥죄어 간다. 하지만 지언은 계속 도망갈 궁리를 하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과 진정을 외면한 채 각자의 고통과 슬픔으로 스스로에게 업보아닌 업보를 지우며 엇갈린 길을 가게 된다.

 

개인적 총 별점은 4.5개.(외전은 제외)

 

피폐함은 3점 정도. 피폐함보단 슬픔과 고통이 더 많은데, 일단 메인수가 한없이 스러지는 약한 캐릭터가 아니다. 어찌됐든 자신의 목숨만은 지키려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업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니까.

 

스토리 전개 방식은 4.5점. 질질 끄는 거 없는 전개다. 2권 중후반부에 지언을 위해 신의를 찾는 과정이 다소 길다 싶었지만, 신의를 만날 수 있도록 나름의 개연성을 위해선 필요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의 매력은 4점 정도.

일단 메인수가 피폐 태그에 비해 정신력이 강하다. ㅋ 겁간을 시작으로 서서히 사내에게 물들여가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때문. 게다가 아무리 지언의 인생이 박복하다고는 하나 애초에 그 박복한 삶의 시작이 사내한테로부터 온 것이기에 지언이 욕먹을 만한 건 한개도 찾지 못 했다.

 

메인공인 사내는 끝까지 이름이 안 나온다.(외전에도 이름이 안 밝혀진다라고 함.) 초반에는 산에 사는 짐승같은 사람인가 싶은데, 뒤로 갈 수록 실제 '짐승' 임을 알게 된다. 작가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 하진 않고 후반부에 간혹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사내의 모습이 호랑이(백호일 것으로 추정. 지언이 다시 만났을 때 흰 갈귀롸 검은 줄무늬라 함)로 보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산군이 아닐까 싶다. 지언을 데려 온 본인이 사는 산의 주인이라 했고, 구미호나 산신을 만나고 후반부에, 사내의 기억속에 호랑이처럼 살았던 일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기 때문.

 

사내 캐릭터가 나쁘진 않았으나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사내같은 캐릭터가 아무리 후회공이라 한들 그닥 큰 점수를 줄 순 없었다. 어쨌든 지언을 데려와 자기 맘대로 아이를 낳으라 하고, 아무리 나중엔 애정과 후회를 했다한들 겁간을 시작으로 지언의 정신을 갉아먹으며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을 저지르면서, 그것을 '애정'이라 칭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무진장 헌신공인 건 맞아서. 그런 모습들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스토리에서 있어선 최근 읽은 비엘 중에 가장 심오한 듯 하다. (여원도 그런 축에 속했는데, 이게 더 한 듯.)

이 소설의 가장 큰 축은 속죄라는 것이 고통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기 위해 하는 것이란 점이다.

읽다보면 다분히 불교적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데, 그 과정이 살짝 불편한 감도 있다. 특히 구미호가 억지로 임신을 강요당하는 지언에게 하는 말들이. 스토리상 그 부분에서 사내가 아직 지언에게 자신의 애정을 강요하던 시기이기에, 구미호의 설득이 참 밉게 보이긴 했다.

 

지언의 현상황을 받아들이고 박복한 지언의 인생에 발을 담그게 된 사내의 인생도 생각하라니. 내가 송지언이라도 개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했을듯. ㅎㅎㅎㅎ 사내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갑작스레 뒤바뀐 자신의 인생조차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 하는 지언에게 상대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게다가 사내는 지언이 끔찍해하는 살인을 하고(지언이 임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구미호에게 갓난아이를 바침.) 억지로 자신의 몸을 개조하게 만들었으니. 사내의 죄가 가히 하늘보다 높다 할 수 있겠다.

 

작가가 후회공을 만들기위해 임신수를 이렇게 이용할 줄 몰랐기에, 이부분에서 참 고통스럽던. 사내보단 지언의 맘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언은 사내와 같이한 짐승같은 생활(흡사 자연인 같은.)에 적응하고, 심지어 사내의 몸에 적응한 자신을 보며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가스라이팅으로 보여지는데, 그래서 좀 불편한 감은 있다. 사내의 헌신과 순진함으로 커버하기엔 저 임신 키워드가 넘나 고통스러운 것.

 

결국 갖게 된 아이도 힘들게 낳았지만 스스로 벼랑으로 내던져버리며 지언에겐 지울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버린다. 본인의 선택도 아닌 사내의 집착과 욕심으로 인한 결과였으나, 도의와 양심적 소양이 강한 지언에게 그 일은 씻을 수 없는 업보가 된 것이다. 

 

이로써 두사람이 각자의 죄와 서로가 연결된 업보를 짊어진 채 다시 만나고 서로에게 고통을 주면서 속죄하는 방식을 택한다. 사실 송지언이 택한 방식이긴 하나 깊은 감정적 동요와 고통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내에겐 그저 그가 떠나지 않는 다는 것만 중요할 따름이다. 

 

지언이 사내에게 고통을 주면서 얻게 되는 만족감, 증오하는 사내와 같이 사는 것으로 인해 자신을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들이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와닿는 점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맘이 무거웠다. 

 

죽기보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상대와 함께 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상대라면 멀어지는 것이 상책인 것을. 사람 맘이란 게 이상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상대도 그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다 한다. 사내로부터 시작된 고통과 처절함, 원망이니 사내는 오롯이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를 용서하나면, 사내는 맘이 편해질 터인데, 지언 자신은 처절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내가 편해지는 모습을 볼 순 없었을 터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 역시 갉아먹는 최악의 방법임을 몰랐을 것이다. 

 

지언의 생각을 바꾸게 해주는 이야기가 2권부터 이어진다. 일선스님이라는 자가 우연히 산속에서 길을 잃고 늪에 빠져 죽을 뻔 한 것을 사내가 구해주면서 세 사람의 짧은 이야기로 극의 흐름이 바뀐다.(스님 역시 평범한 삶은 아니었음ㅋ)

 

그 사이 지언은 임신을 하게 되지만, 억지로 요술로 만든 몸이 견디지 못 하고 죽음의 경계에서 새의(신의)를 통해 살아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내는 지언을 놓아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 후 사내 역시 자신이 저질렀던 오만과 폭력을 후회하고, 지언은 고통으로 사내를 옭아매며 스스로에게도 고통을 주던 속죄의 방법에서 헤어나와 삶을 구원하고자 한다. 

 

결말은 꽉찬 해피엔딩은 아니다. 열린결말 비슷하고, 외전의 리뷰들을 보니, 산군인 사내보다 오래 못 사는 지언을 위해 신선이 되라는 새의(신의)의 조언으로 지언은 신선이 되기 위해 수양하는 모양. 또한 본편에선 없었던 아이가 새의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전반적 내용이라길래 일단 보류.(외전에 대해선 혹평이 많은데 아무래도 독자는 메인 주인공들의 좀 더 다정한 이야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편에 워낙 없어서.ㅋ1/3가량 밖에 안 된다 하니 뿔난 독자들이 꽤 있는 모양.)

 

흥미로워던 건 초반에 비해 변해가는 지언의 모습이었다. 박복하게 흘러가는 인생이긴 했으나, 의욕도 뭣도 없이 흘러가는대로 살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지언이 얼마나 삶에 절박한지, 그리고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지 느끼게 되었다.ㅎ

사내와의 생활로 자신이 짐승처럼 변했다 했지만 짐승같은 생활 속 자유나 사내가 전해주는 강함과 애정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흔들리고 스스로 고통을 자처한 건 아닌가 싶었다.

 

사내 또한 짐승에서 지언으로 인해 점차 변화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동물과 같은 본능보다 지언을 진심으로 대하고자 스스로 바뀌는 과정들이 안쓰럽긴 했으나......................앞서 말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정은 안감. ㅋㅋㅋㅋㅋ

 

인상깊고 좋은 비엘소설이긴 하나, 사랑이란 감정에 있어서 애달픔은 모르겠다. 상황적으로 그건 좀 받아들이기 어려움.

그리고 본편만 봤을 때는 지언이 아이를 낳았더라도 그닥 모성애가 깊었을 거 같진 않음. 마지막까지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가 사내와의 '정'이라기 보단 '생명'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란 인상이 강해서.

지언도 나름 꿈꾸는 행복한 가정이 있긴 했으나, 그게 사내와 결코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뉘앙스도 아니었고.

 

외전에서 아이를 새의에게 맡기고 본인은 신선 수양을 위해 떠나고 사내는 간혹 지언을 찾아가나 아이를 보러 온다는 리뷰들은 없어서...

 

둘이 잘 사는 것으로 끝나긴 하나 해피엔딩이 아니란 이유가 이것이다. 지언은 마지막까지 사내에게 '정' 보단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업보' 와 속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 하고, 그것에 어느정도 책임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반면 사내는 전혀 아닌 듯 하고ㅎㅎㅎ 결국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지만, 결코 헤어질 수 없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다 읽고 나서도 뭔가 묵직한 것이 남아있는듯 하다. 

어찌됐든 2016년도 출간인데도 잘 쓴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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